특별전

죠루리지의 국보 아미타여래 수리 완성 기념 특별전

성스러운 땅 미나미야마시로
― 나라와 교토를 잇는 불교보물 ―

 미나미야마시로(南山城)는 교토부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나라시와 가장 가까운 지역이 있습니다. 그곳은 현재 오래전 존재했던 야마시노로쿠니(山城國)라는 지방 행정 국가명에서 따왔습니다. 완만한 산간 사이로 키즈가와(木津川)가 흐르는 풍경이 매력적인 아름다운 지역입니다. 이곳은 일본 내에 불교가 정착되는 7세기에 이르러 많은 사원이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미나미야마시로는 쇼무텐노(聖武天皇, 701~756)가 쿠니쿄(恭仁京)를 조영하면서 역사 속 무대에 처음 등장하게 됩니다. 그 후 나라・헤이죠쿄(平城京)에서 시작하여 교토의 나가오카쿄(長岡京), 헤이안쿄(平安京)로 이어진 천도 이후에도 이곳 미나미야마시로는 이들 도성을 잇는 회랑의 역할로서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또한 교키(行基, 668~749)가 키즈가와와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다수의 사원이 건립되었습니다. 토다이지(東大寺)와 코후쿠지(興福寺)와 같은 나라 지역의 대형 사원과 관계 속에 이곳 지역에는 많은 사원이 연이어 건립되었습니다. 키즈가와 유역에 위치한 산기슭 곳곳에서는 속세에서 벗어난 성스러운 땅으로서 승려들의 산악에서의 수행 거점이 되었습니다.
 카마쿠라 시대(1185~1333)에는 게다츠 쇼닌 죠케이(解脫上人貞慶, 1155~1213)의 활동이 대표적입니다. 코후쿠지에서 승려 생활을 시작한 그는 활동 거점을 카사기데라(笠置寺)를 거쳐 카이쥬센지(海住山寺)로 옮겼고 석가여래와 미륵보살, 관음보살을 향한 신앙심을 고양함과 동시에 나라 지역의 계율 부흥에 힘썼습니다. 그리고 에도 시대(1603~1867)에는 각 지역에 염불을 확대한 타이츄 쇼닌(袋中上人, 1552~1639)의 활동이 있습니다. 그의 만년에는 미카노하라(甁原, 키즈가와시 카모쵸)를 거점으로 하였습니다. 이처럼 미나미야마시로는 각 시대를 거쳐 문자대로 일본 불교의 성스러운 땅으로서 존재하였습니다.
 본 전시회에서는 죠루리지의 국보 아미타여래가 5년에 걸쳐 보존 수리가 완성되었음을 기념하여 아홉 아미타여래상 중 두 본존을 공개합니다. 수리 후 최초로 선보이는 것으로 그 우아한 모습을 죠루리지를 벗어난 곳에서 관람하실 수 있는 귀중한 기회입니다. 더불어 미나미야마시로와 주변 지역의 사원과 신사에서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불상과 신상(神像)을 시작으로 회화, 서적・고문서, 고고 유물 등을 통해 이곳에서 꽃핀 불교문화의 전모를 보실 수 있습니다. 다채로운 작품을 통해 미나미야마시로의 풍요로운 역사와 문화를 재인식하실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녹음이 풍요로운 이곳 지역에 여전한 성스러운 땅의 숨결을 엿볼 수 있습니다.

국보
아미타여래 좌상(아홉 구체 중 하나)
(교토・키즈가와시 죠루리지(절))

전시기간

2023년 7월 8일(토) ~ 9월 3일(일)
전기 : 7월 8일(토) ~ 8월 6일(일)
후기 : 8월 8일(화) ~ 9월 3일(일)

전시장소

나라국립박물관 동신관 서신관

휴관일

월요일(단, 7월 17일은 전시 운영), 7월 18일(화)

운영시간

오전 9시 30분 ~ 오후 6시
※입장은 관람 종료 30분 전까지

관람요금

 당일발권단체발권(20명 이상)
일반1,800엔1,600엔
고등학생 / 대학생1,200엔1,000엔
초등학생 / 중학생600엔400엔

특별전 티켓으로 명품전(나라불상관・청동기관)까지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박물관 내부가 혼잡한 경우에는 입장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본 특별전은 사전 예약 없이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주 최

나라국립박물관, 니혼케이자이 신문, TV 오사카

후 원

교토부, 교토부교육위원회, 키즈가와시, 쿄타나베시, 죠요시, 이데쵸, 우지타와라쵸, 카사기쵸, 세이카쵸, 미나미야마시로무라, 와즈카쵸

협 찬

JR 토카이, 타케나카공무점, NISSHA, 후쿠쥬엔

특별협력

교토 미나미야마시로 옛 사찰 연합

협 력

교토 야마시로 지역 진흥회, 닛폰코도, 불교미술협회

주목할 부분

국보 아미타여래 수리 완성 기념 : 110년 만에 이루어진 죠루리지 본존 수리

죠루리지(淨瑠璃寺)의 본존인 국보 아미타여래 좌상(구체아미타)은 1909년부터 1910년에 걸쳐 실시한 수리 이후, 약 110년 만에 보존 수리가 이루어졌습니다. 2018년부터 약 5년간 계획으로 진행된 아홉 아미타여래 수리 사업은 올해 3월로 끝을 맺었고, 본 특별전에서는 마지막 년도에 수리한 아미타여래 중 두 본존을 특별 공개합니다.

국보
아미타여래 좌상 (아홉 본존 중 여덟 번째 본존)
헤이안 시대(12세기)
(교토・키즈가와시 죠루리지(절))
국보
아미타여래 좌상 (아홉 본존 중 첫 번째 본존)
헤이안 시대(12세기)
(교토・키즈가와시 죠루리지(절))

– 십이신장상, 140년 만에 나라에 결집. 본존 약사여래와의 재회 –

현재 도쿄・세이카도문고미술관과 도쿄국립박물관이 나눠 소장하고 있는 십이신장(十二神將)은 19세기 말까지 죠루리지 삼층탑에서 약사여래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후, 십이신장은 1884년경까지 모두 절을 떠났습니다만, 이번 특별전을 계기로 12구가 모두 나라로 모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로 140년만에 이루어진 귀향입니다.

(중앙) 중요문화재 약사여래 좌상 헤이안 시대(11세기) 교토・키즈가와시 죠루리지(절) 사진 제공: 도쿄국립박물관 전시 기간: 7월 9일~ 8월 6일
※약사여래 좌상 전시는 7월 9일(일)부터 시작됩니다.

중요문화재 십이신장 입상 중 용신・뱀신・양신・원숭이신・개신 : 카마쿠라 시대(13세기) 도쿄국립박물관 사진 제공: 도쿄국립박물관
중요문화재 십이신장 입상 중 쥐신・소신・호랑이신・토끼신・말신・닭신: 카마쿠라 시대(13세기) / 돼지신: 카마쿠라 시대 안테이 2년(1228년)
도쿄・세이카도문고미술관 사진 제공: (공익재단법인) 세이카도 / DNPartcom

주요 전시품

중요문화재
약사여래 좌상
(교토・와즈카쵸 야쿠시지(절))

헤이안 시대(8~9세기)

불상 대부분을 하나의 나무로 조각하였다. 의복으로 양 발목을 감싸고 신체와 의복의 질감을 부드럽게 하는 표현 방식은 나라 시대(710~794) 후기의 건칠상(乾漆像)을 떠올리게 한다. 반면, 어깨 폭이 넓고 다부진 신체 표현 등은 헤이안 시대(794~1185) 초기의 표현 양식의 특징이다.

중요문화재
보살형 입상
(교토・세이카쵸 죠넨지(절))

헤이안 시대(9~10세기)

원래는 호우소노진쟈(祝園神社)에 있는 진구지(神宮寺)의 불상으로, 20세기 이전에 죠넨지(常念寺)로 옮겨졌다. 1950년 보존 수리 사업 이전에는 왼쪽 손에 약단지(藥壺)를 들고 있었다. 신과 부처를 하나의 존재로 여긴다는 신불 습합(神佛習合)의 과정에서 탄생한 보살형의 약사상으로 보인다.

교토부 지정문화재
우두천왕 입상
(교토・쿄타나베시 슈치진쟈(신사))

헤이안 시대(10~11세기)

본 전시품은 후겐지다니(普賢寺谷)에서 서쪽, 타카가미네(高ヶ峰)의 산 정상에 있는 슈치진쟈(朱智神社)를 지키는 신상(神像)이다. 분노하는 얼굴로 위로 솟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이다. 정수리 부분에는 소의 형상을 한 머리가 있다. 이 절은 야마시로(山城)・카와치(河内)・야마토(大和)로 일컫는 세개의 쿠니(國) 경계에 위치하고 있어 외부로부터 침입하는 악귀를 방제하는 목적으로써 안치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중요문화재
십일면관음 입상
(교토・키즈가와시 카이쥬센지(절))

헤이안 시대(10세기)

카이쥬센지의 본존이다. 한 그루의 비자나무로 조각하였고 안을 파지 않았다. 치켜 올라간 눈썹에 얇은 눈매가 인상적이다. 유서 깊은 관음신앙의 성지였음을 이야기하는 듯 나라 시대(710~794)의 불상을 답습한 표현이 보인다.

중요문화재
십일면관음 입상
(교토・우지타와라쵸 젠죠지(절))

헤이안 시대(10세기)

토다이지(東大寺)의 벳토(別當, 사원을 관리하는 직책)였던 헤이소(平崇, 926~1002)가 세운 젠죠지(禪定寺)의 본존이다. 이 사원이 세워질 무렵(995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굳은 심지가 보이는 표정과 정면을 향한 강한 자세는 나라 시대(710~794)의 건칠(乾漆) 제작 불상을 떠오르게 한다. 이 무렵 나라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불상 양식을 드러내고 있다.

쿄타나베시 지정문화재
항삼세명왕 입상
금강야차명왕 입상
(교토・쿄타나베시 슈호지(절))

헤이안 시대(12세기)

밀교에서는 부동명왕・항삼세명왕・군다리야차명왕・대위덕명왕・금강야차명왕을 오대명왕(五大明王)으로 모시고 있다. 본 작품은 오대명왕 중 두 불상이다. 20세기 초기까지 슈호지(壽寶寺)와 인접한 거리에 있던 에니치지(惠日寺, 지금은 없음)의 오대당(五大堂)에 모셔져 있었다. 같은 시내에 소재하는 쇼후쿠지(正福寺)에는 한 세트로 된 세 불상이 있는데 그 중 대위덕명왕상은 이 두 불상과 같은 시기에 제작되었다.

중요문화재
애염명왕 좌상
(교토・키즈가와시 진도지(절))

헤이안 시대(12세기)

부동명왕 입상과 함께 진도지(神童寺)에 전해진 입상이다. 하늘을 향해 활을 쏘는 모습은 경전에 근거한 것이다. 천궁애염(天弓愛染)이라 불리는 것으로 치쇼대사 엔친(智證大師圓珍, 814~891)의 본존으로 알려져 있다. 천궁애염의 모습을 한 불상은 유례가 적기 때문에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중요문화재
사천왕 입상
(교토・키즈가와시 카이쥬센지(절))

카마쿠라 시대(13세기)

스케일이 큰 작풍과 틈새 없는 조각기법을 자랑하는 걸작이다. 각 불상의 복장과 신체 채색은 카마쿠라 시대(1185~1333) 초기에 부흥한 토다이지(東大寺) 대불전 사천왕상(현재는 없음)의 모습과 일치한다. 켄포 2년(1214년)에 완성한 오중탑(五重塔)에 안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중요문화재
범종
(교토・카사기쵸 카사기데라(절))

카마쿠라 시대 켄큐 7년(1196년)

범종은 사원에서 법회를 시작할 때나 시간을 알려줄 때 치는 범음구(梵音具)이다. 본 전시품은 카마쿠라 시대(1185~1333)초기의 것으로 토다이지(東大寺) 부흥에 앞장선 쵸겐(重源, 1121~1206)이 카사기데라(笠置寺)에 들여온 것이다. 범종의 하단부분에 몇 군데의 패임이 있는 형태로 보아 중국의 범종을 답습한 것으로 보인다.

교토부 잠정등록문화재
아미타정토만다라
(교토・키즈가와시 카이쥬센지(절))

카마쿠라 시대(13세기)

원래는 도솔천만다라와 한 쌍으로 카이쥬센지(海住山寺)의 경당에 안치되었다. 서쪽 세계에 있는 아미타여래의 정토를 그린 것으로 삼각꼴 형태의 회화 구성과 제존(諸尊)의 배치는 유례가 적다. 죠케이(貞慶, 1155~1213)가 바라보는 아미타 정토관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중요문화재
도솔천만다라
(교토・교토시 코쇼지(절))

카마쿠라 시대(13세기)

미륵보살이 머무는 도솔천을 그렸다. 아미타정토만다라와 한 쌍으로 겐닌 2년(1225년)에 죠케이(貞慶, 1155~1213) 서거 13주년 기일에 세워진 카이쥬센지(海住山寺)의 경당에 안치되었다. 수리 당시에 발견된 묵서를 통해 두 작품은 한 세트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중요문화재
문수보살 기사상
(교토・키즈가와시 다이치지(절))

카마쿠라 시대(14세기)

『쿄츄지에 관련된 설화를 담은 그림(橋柱寺緣起)』에 의하면 분포 2년(1318년)에 건립된 쿄츄지(橋柱寺, 현재 다이치지)의 본존은 교키(行基, 668~749)가 설치했던 이즈미오오바시(泉大橋)의 기둥 목재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본 전시품은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며, 카이케이(快慶, ?~1227년 경)가 제작한 아베몬쥬인(安倍文殊院)의 문수상에 근거하였다. 사자좌(獅子座)는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중요문화재
십일면관음 좌상
(교토・키즈가와시 겐코지(절))

카마쿠라 시대(13세기)

겐코지(現光寺)에서 모시고 있는 본존이다. 곧게 뻗은 체구와 역동성 있는 옷 주름이 인상적이다. 죠케이(貞慶, 1155~1213)의 주변 인물들의 관여로 관음보살의 정토 보타락산에 앉아있는 십일면관음상을 제작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와즈카쵸(和束町)에 소재하는 콘타이지(金胎寺)에 본 작품과 매우 닮은 미륵보살상이 오늘날에도 전해지고 있다.

중요문화재
잇큐 소쥰상 자찬
(교토・쿄타나베시 슈온안(절))

무로마치 시대(15세기)

슈온안(酬恩庵)을 세운 선종 승려 잇큐 소쥰(一休宗純, 1394~1481)의 초상화이다. 제멋대로 자란 머리카락과 수염을 다듬지 않고 왼발을 발판에 올려 의자에 앉는 등의 모습은 형식에 맞추지 않는 잇큐의 개성을 드러낸다. 상단에 쓰인 찬술은 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을 시기에 스스로 쓴 것이다.

타이츄 쇼닌 좌상
(교토・키즈가와시 오우류지(절))

에도 시대(17~18세기)

각 지역을 순회하면서 염불을 널리 알린 타이츄 쇼닌(袋中上人, 1552~1639)의 좌상이다. 그는 말년에 현재의 키즈가와시 카모쵸 지역인 미카노하라(甁原)를 거점으로 하였다. 초기에는 타이츄가 세운 신코안(心光庵)에 안치되었으나 이후에 오우류지(鶯瀧寺)로 옮겨졌다. 눈꼬리가 처지고 볼이 패인 모습은 노인의 형상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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