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이의 문

외관

오가이의 문은 과거 나라국립박물관 부지 내에 있었던 관사의 문으로 동북쪽 끝 산책로 부근에 있다. 목조 건축물로 지붕은 동판으로 되어있다.

소설가・번역가・군의(軍醫) 등으로 알려진 모리 오가이(1862~1922)는 1917년 12월부터 1922년 7월 현역으로 작고할 때까지 제실박물관 총장 겸 오늘날의 궁내청 서릉부 장관직을 맡았고 1922년을 제외한 매년 가을에는 제실나라박물관을 방문하여 이 관사를 이용하였다. 당시의 총장은 도쿄・교토・나라의 제실박물관과 쇼소인 사무를 총괄하는 요직으로 약 1개월간 나라에 있으면서 쇼소인 보물의 폭량(曝凉,날씨가 좋은 날을 골라 쇼소인의 보물을 햇빛과 바람에 말리는 작업) 의례와 창고 개・폐봉 의례의 참가와 보물 조사와 수리 감독, 박물관 지도 등에 관여하였다.

오가이는 재직 중에 크나큰 개혁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1889년부터 매년 가을에 실시되는 쇼소인 보물의 폭량 의례는 본디 「일정 자격자」를 가진 자가 보물을 참관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신분이 높은 자에 한정된 것이었다. 오가이는 그것을 「민간 독지가」(연구자)에게도 허가하였다.

또한 오가이는 공무 중에도 틈틈히 주변의 신사・사찰과 오래된 유적을 순방하였다. 그가 쓴 단가집 「나라 오십수(奈良五十首)」와 일지(日誌)「영도방고록(寧都訪古錄)」을 통해 나라 체재 중의 모습과 나라의 역사문화를 향한 그의 깊은 관심을 엿볼 수 있다.

관사는 1945년 이후로 해체 작업이 이루어져 지금은 문만 남아있으나 1999년에 주변 산책로 정비 사업에 맞춰 수리 작업이 이루어졌고 이때 동판이 제작되었다.
「오가이의 문(鷗外の門)」이라 쓰여진 휘호는 당시 다이안지의 주지였던 코우노 세이코(河野淸晃, 1906~2001)의 글씨이다.

원숭이 뛰놀던 관사 뒤편에 큰 삼나무는 쓰러져 흔적도 없이 덧없는 세상이다.

칙서를 봉한 대나무 껍질 자르는 가위 소리는 아침 공기 스산히 울려퍼지네

「나라 오십수(奈良五十首)」에서 인용

명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