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란 성인(親鸞聖人, 1173~1262)는, 교토 쇼렌인(靑蓮院)에 있는 지엔(慈圓, 1155~1225)을 통해 득도 한 후, 교토의 히에잔(比叡山)과 나라에서 수련하였다. 그 뒤는 호넨(法然, 1133~1212)을 따라 전수염불(專修念佛, 정토에 왕생하기 위해서 염불 이외의 행을 섞지 않고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오로지 염불을 외우는 것)을 하고, 스승의 사후에는 『교교신쇼(敎行信證)』를 집필하여 정토신종을 개창하였다.
도상 속의 신란은 목에 모자를 둘러 가사(袈裟)를 입었으며, 두 손으로 염주를 매만지고 있다. 그의 앞에는 지팡이가 옆으로 놓여져 있다. 또한 신란이 아게다다미(上疊) 위에 펼친 곰 가죽 위에 앉아있기 때문에 쿠마가와노미에이(熊皮御影)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안죠노미에이(安城御影)라 불리는 신란의 초상화는 곰 가죽 대신에 너구리 가죽을 깔고 있으며, 지팡이 외에도 화통과 짚신이 놓여져 있는 점이 다르다. 모두 신란의 활발한 포교 활동을 상징하는 것으로, 나이든 신란이 조용히 앉아있는 모습에는 정토신종을 연 신란을 향한 깊은 존경심을 밝히는 제자의 시선이 느껴진다. 도상의 상단 우측에는 사각형 색지에 칠언사구(七言四句)로 ‘행자숙보설여범(行者宿報設女犯) 아성옥여신피범(我成玉女身被犯) 일생지간능장엄(一生之間能莊嚴) 임종인도생극락(臨終引導生極樂)’의 글귀가 적혀 있는데, 이는 신란이 롯카쿠도(六角堂)에 칩거할 당시에 구세관음이 꿈에 나타나 읊은 게구(偈句)라 한다. 그 사실은 회화와 문장을 엮어 신란의 일대기를 그린 에덴(繪傳)에도 쓰여있다.
도상은 신란의 면모를 잘 표현하고 있으나 안죠노미에이에서 보이는 날카로운 얼굴선이 없고, 또다른 신란의 초상화인 카가미노미에이(鏡御影)와 같이 신란이 마치 눈 앞에 있는듯한 현실감 있는 표현과도 대비된다. 아마도 카마쿠라 시대(1185~1333) 후기 무렵, 교단이 성숙기에 접어들었을 즈음에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외 표현은 오히려 전통적인 승려 초상화 제작 기법에 따르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족자를 묶는 끈에는 ‘□信房御影[四句文尊圓親王/繪淨賀法橋]’라는 글이 쓰여있는데, 이에 따르면 도상 위의 게구는 쇼렌인파의 손엔(尊円, 1298~1356)이 쓴 것이고, 도상은 죠가(淨賀, 1275~1356)가 그렸다고 한다. 죠가는 에이닌 3년(1295)에 카쿠뇨(覺如, 1270~1351)에게 최초의 젠신쇼닌신란덴에(善信上人親鸞傳繪)을 그리게 한 사람이다. 코우라쿠지파(康樂寺派)로 불리는 그들은 진종(眞宗) 승려의 일대기를 그린 두루마리 그림과 종파 개창자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러나 죠가 본인의 작품은 현재 남아있지 않아 이것이 죠가의 유일한 작품인지에 대한 여부는 의문이 남는다.
본 도상은 상하 좌우에 제작 당시의 그림 표구가 남아있다.
e국보
정토진종을 세운 신란(親鸞, 1173~1262)을 그린 것이다. 곰 모피를 깔고 앉아 있어 ‘웅피어영(熊皮御影)’으로도 불린다. 교토 롯카쿠도(六角堂)에서 구세관음이 신란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진 글이 우측 상단의 색지에 적혀있다. 그림은 신란전회(親鸞傳繪)를 처음으로 그린 죠가(淨賀, 1275~1356)의 작품이라 전해진다.
(타니구치 코세이)(번역: 박주현)나라국립박물관 삼매경에 빠지다 ―최상의 불교 미술 컬렉션―. 나라국립박물관, 2021.7, 2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