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의 생전 모습을 묘사하였다고 하는 교토 세이료지(淸凉寺) 본존의 모사품이다. 대좌에쓰여진 묵서를 통해 겐카이(玄海, 생몰년미상)가 이를 만들었고 율종 승려 닌쇼(1217~1303)를 개안도사(開眼導師)로서 1273년(분에이 10년)에 공양한 것을 알 수 있다. 머리 부분 안에는 수정으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사리용기가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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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사가(嵯峨) 지역의 세료지(淸凉寺)의 본존 목조 석가여래 입상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중국 송나라로 들어간 승려 쵸넨(奝然, 938?~1016)이 북송 옹희 2년(985)년에 우전왕 사모상(優填王思慕像)을 본떠 만들어 일본으로 가져온 불상으로, ‘삼국전래 석가’로서 예로부터 숭상 받아왔다. 본 작품은 이를 본뜬 모각상으로 카마쿠라 시대(1185~1333) 이후에 다수 남아 있다. 머리카락을 새끼줄을 만것처럼 표현하였고 옷깃 끝을 잡아당겨 대의(大衣)를 두르고 있다. 또한 세료지식 특유의 원형 파문을 이는 듯한 옷 주름을 표현하고 있다. 원형의 특수한 형식을 답습하고 있다. 그러나 원형 불상은 매우 이국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나, 본 불상은 카마쿠라 시대 특유의 명쾌함을 갖추고 있다. 즉, 머리를 크게 표현하고 옷 주름을 다리 사이까지 새기는 등, 모각을 하면서도 카마쿠라 시대의 취향을 크게 반영하고 있다. 이로써 원형의 불상에서 느껴지는 이국적인 특색은 옅어졌다.
대좌의 뼈대에는 묵서명이 있는데, 이를 통해 겐카이가 분에이10년(1273)에 나라 간고지(元興寺)의 후루하시지 금당(古橋寺金堂)의 목재를 사용하여 조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겐카이에 대해서는 이 밖에 다른 작품이 없어 어떤 계통의 불사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나의 비자나무로 만들었으며, 뒷머리 부분은 다른 목재로 만들었다. 머리 부분은 안을 파서 옥안(玉眼)을 끼웠고 그 속에 납입품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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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 생전의 모습을 담았다고 하는 교토 세류지(淸凉寺)의 본존(本尊)을 본뜬 것이다. 대좌(臺座)에 적힌 명문에 의하면 1273년(분에이9년)에 공양한 것으로 불공(佛工) 겐카이(玄海, 생몰년미상)가 제작했다고 한다. 머리 부분에는 수정으로 만든 것으로 추측되는 사리용기가 경첩 등으로 연결한 금속판 사이에 끼워진 상태로 복장되어 있다.
(나이토 와타루)(번역: 박주현)나라국립박물관 삼매경에 빠지다 ―최상의 불교 미술 컬렉션―. 나라국립박물관, 2021.7, 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