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필사경을 발원한 소쇼(宗性, 1202~1278)는 수많은 저서를 남긴 카마쿠라 시대(1185~1333)를 대표하는 토다이지(東大寺) 학승 중 한명이다. 경전 말미에 쓰인 기록에 의하면 켄지 원년(1275) 8월 4일 ‘다년간 함께 지냈던(多年同宿)’ 소쇼의 애동(愛童) 리키묘마루(力命丸, ?~1275)가 ‘코후쿠지 하야시코지(興福寺林小路, 지금의 하야시코지쵸)에서 살해당했다. 사건에 비탄에 빠진 소지는 나라를 벗어나 카사기(笠置, 교토시 남부)에서 은둔 생활을 보냈다. 그리고 리키묘마루를 위해 주위 승려들과 함께 법화경 8권을 필사하여 그의 1주기에 되는 이듬해 8월 4일에 카사기데라(笠置寺) 미륵당에 공양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리키묘마루 살해 사건으로 인한 소쇼의 슬픔과 소쇼의 카사기에서의 은둔 생활에 대해서는 켄지 원년(1275) 여름 이후에 저술한 소쇼의 저작 (『화엄경조사전(華嚴宗祖師傳)』등)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본 권 말미의 기술에서는 ‘연모의 슬픈 눈물은 아직도 마르지 않고(戀慕の悲淚未だ乾かず)’, ‘눈물 속에 붓을 적셔(淚底に筆を染め)’ 등, 리키묘마루를 잃은 75세의 소쇼의 깊은 슬픔을 알 수 있다. 또한 필사에 참여한 승려의 대다수도 토다이지 문서를 통해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본 작품은 소쇼의 자필과 토다이지 승려들의 협력 등의 필사 배경, 공양 경전으로서의 성립 과정을 자세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카마쿠라 시대의 필사경으로, 중세 시대 나라의 사찰 사회의 실태를 연구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e국보
본 경전의 필사를 발원한 소쇼(宗性)는 카마쿠라 시대(1185~1333)를 대표하는 토다이지의 승려이다. 1275년(켄지 원년) 귀여워했던 어린아이 리키묘마루(力命丸)가 살해 당한 것을 슬퍼하여 교토 남부에 위치하는 카사기(笠置)에 은둔했다. 그는 아이의 1주기에 주변의 승려와 함께 이 경전을 필사했다.
(사이키 료코)(번역: 박주현)나라국립박물관 삼매경에 빠지다 ―최상의 불교 미술 컬렉션―. 나라국립박물관, 2021.7, 2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