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만다라(兩界曼茶羅)와 구리가라용 이동자상(俱利伽羅龍二童子像)으로 된 세 폭의 그림이다. 양계만다라는 금강계(金剛界)와 태장계(胎藏界) 만다라로 구성된다. 그 중 금강계는 갈마회(羯磨會)의 61존상에 현겁(賢劫) 16 보살, 네 곳 방위를 지키는 사명왕(四明王)을 더한 81존상으로 구성된다. 거기에 금강계와 태장계 모두 교토 다이고지(醍醐寺)가 소장 중인 백묘(白描) 에이잔본(叡山本) 대비태장생대만다라(大悲胎藏胎藏曼茶羅)와 같은 계통이며 모두 천태종계의 도안을 따랐다.
구리가라용이동자상은 손잡이에 삼고저(三鈷杵)가 달린 검을 감싸는 구리가라용왕과 금갈라(矜羯羅), 제타가동자(制咤迦童子)를 바다 위 암좌 위에 그렸다. 구리가라용왕은 부동명왕이 몸을 변하여 된 용왕으로 여기며 그 모습은 『설구리가라용왕상법(説矩里伽龍王像法)』에 따랐다. 역동감이 넘치는 화염과 두 동자의 옷 주름에서 보이는 억양있는 묵선을 통해 생기있는 도상을 만들어냈다.
세 폭 모두 13세기 카마쿠라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으나 구리가라용이동자상이 조금 더 일찍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제작 당시부터 세 폭으로 구성되었는지는 검토해야 할 여지가 있다. 또한 세 폭은 동일한 표구로 제작되었으며 그 중 태장계만다라의 축(軸)에서 발견된 묵서(쿄호 6년, 즉 1721년)에 의해 오사카 세후쿠지(施福寺)에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후쿠지는 오사카 이즈미시 마키오산(槇尾山)에 위치하며 진언종 사찰로서 명맥을 오랫동안 유지하였으나 17세기 중반에 천태종으로 개종하였다. 세 폭을 함께 모신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적어도 세후쿠지가 천태종으로 개종한 이후로 추측된다.
e국보
양계만다라와 부동명왕의 변신한 모습인 구리가라용검(倶哩迦羅龍劍)을 그린 그림이 세트로 전해 내려온 것이다. 구리가라용검을 중심에 두고 좌우에 양계만다라를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강계는 81존상을 표현한 것으로 천태종에서 중시했던 형식이다.
(하기야 미도리)(번역: 박주현)나라국립박물관 삼매경에 빠지다 ―최상의 불교 미술 컬렉션―. 나라국립박물관, 2021.7, 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