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이전까지 교토 히가시야마(東山)의 냐쿠오지샤(若王子社)에 있었다. 깊이 있는 조각 기법으로 만든 제작된 용모 및 날카로운 의복 주름 표현은 단상(檀像) 조각의 특징을 확연히 드러낸다. 양 무릎의 폭이 연화좌의 연육(蓮肉) 너비를 넘는 표현과 의복의 조각 방식으로부터 교토 토지(東寺)에 있는 강당 제존상과 매우 비슷하다는 지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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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이 동상의 가장 큰 부분은 연꽃 받침대는 일본 육두구 (카야)입니다. 전반적으로 생생하게 보인다. 가운의 드레이프는 우아하고 예리하게 조각되었습니다. 얼굴은 인도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원래 히가시야마의 니 야쿠 오지 샤 신사에 모신 교토 부 지구.
메이지 시대(1868~1912) 초두까지 교토 히가시야마(東山)의 냐쿠오지샤 (若王子社)에 전래하였던 불상이다. 깊게 판 이목구비와 섬세하게 조각한 옷 주름은 단상(檀像, 백단으로 조각한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무릎이 대좌 밖으로 나온 표현과 옷 주름의 조각이 토지(東寺) 강당(講堂)에 안치된 불상들과 유사하다.
(야마구치 류스케)(번역: 박주현)나라국립박물관 삼매경에 빠지다 ―최상의 불교 미술 컬렉션―. 나라국립박물관, 2021.7, 295
원래는 교토 히가시야마(東山)의 냐쿠오지샤(若王子社)에서 모셔졌던 것으로 보이나 19세기 말에 시행된 신불분리(神佛分離)에 의해 그 신사의 신관(神官)이 소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후 3명의 문화재 수집가를 거쳐 국가에 귀속되었다. 냐쿠오지샤는 30여년간 상황으로서 권력을 유지한 고시라카와(後白河) 법황(1127~1192, 재위, 1155~1158)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전승이 있어 12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나 후술하다시피 본 불상의 제작 시기는 9세기로 소급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본 불상을 제작한 당시에는 어디에 안치되었는지 알 수 없다.
본 불상의 소재는 비자 나무로 보이며, 양 손과 나발(螺髮)을 제외하고 대좌의 연육부(蓮肉部)까지 하나의 나무로 조각되었다. 불상 내부는 파지 않았다. 이러한 구조는 나라 시대(710~794) 후기부터 헤이안 시대(794~1185) 초기에 제작된 조각 기법의 특색이다. 또한 굴곡이 깊은 옷 주름 사이로 날카로운 주름을 넣는 번파식(飜波式) 주름을 적절히 배치한 것과 교토 토지(東寺, 쿄오고코쿠지)의 성승문주상 및 오사카 시텐노지(四天王寺)의 아미타삼존 중 중앙의 존상과 작풍이 비슷한 것으로 보아 제작 시기를 9세기 중반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본 작품의 용모에는 독특한 이국적인 분위기가 있다. 두꺼운 눈꺼풀과 큰 눈동자, 긴 눈꼬리 등은 어딘가 인도 불상의 표정을 연상시킨다. 이와 같은 인도풍 불상으로는 오사카 칸신지(觀心寺)의 여의륜관음상, 나라 홋케지(法華寺)의 십일면관음상, 고베시 코세츠미술관의 약사여래좌상 등이 있다. 헤이안 시대(794~1185) 초기에 제작된 조각 중에서 하나의 계보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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